문서자료/한국역사 2

[인용] 을지문덕

[동아일보] ‘4000년 역사 제1의 대위인(大偉人)’ 을지문덕!(단재 신채호) 그 을지문덕은 살수대첩이 끝나자마자 역사의 기록에서 홀연히 사라진다. 수(隋)나라 장수 우중문을 우롱했던 ‘오언시(五言詩)’만이 전할 뿐. 대체 그 청사에 빛나는 전략가 을지문덕은 어디로 갔을까. 못내 안타까웠던지 시인 김정환은 ‘상상하는 한국사’를 썼다. “고구려는 ‘공(空)’인가. 일순 찬란한 섬광을 발하다가 사라져버린. 그러나 그 빛이 너무 눈부셔 역사 속에 영원히 각인된….” 하기야 ‘살수’가 어디인지조차 분명치 않다. 청천강을 이름인가, 중국의 능하(凌河)를 이름인가. 일설에는 압록강이 살수라고도 하니. 을지문덕은 ‘위지문덕(尉支文德)’으로 불렸다고 한다. ‘위지’는 천제(天帝)의 아들을 뜻했으니 왕조시대에도 그의 ..

[삼족오]

삼족오 : 다리가 셋인 까마귀 태양속에서 다리가 세개인 새가 나타났고, 용을 주식으로한다는 전설속의 새 태양의 화신 - 태양의 흑점을 보고 연상되었다는 전설 삼족오의 기원은 기원전 4천년이나 되나 고구려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됨 고구려 후기로 갈수록 삼족오는 화려해지면서 봉황에 가까워진다. 고려시대에 다소 문양이 나타나나, 조선시대에 와서는 사라지게 됨 유교적 사상에 의해 존재할 수 없는 새로 인식하였고 또 허구라 생각되었다. 그리고 사대주의에 의해 스스로 중국을 하늘의 중심으로 간주하였고 조선은 하늘의 중심이 될 수 없다는 소극적인으로 자세로 일관하여 기억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다함 현 시대에서는 일본에서 삼족오 문양을 많이 사용하고 있고, 중국 또한 사용하고 있으나 우리는 다소 조금 특정 분야에서만..